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 차부터 본격적으로 전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인생은 독고다이-가 모토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인강 듣고 독서실에서 공부했었습니다. 5월부터 다음 연도 6월까지 전업으로 공부했으니 총 1년 하고도 16일의 여정이었네요.
2차는 기초강의 → 심화강의 → 문제풀의 강의 → 모의고사까지.. 참 커리큘럼이 많았습니다. 강의도 중요하지만 내 머릿 속에 집어넣는 게 중요하니 기초 강의만 듣고 모의고사만 하자고 생각했었는데요.
사람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요. 남들 듣는 강의 안 들으면 뒤쳐질 것 같고 시험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결국 기초+심화 강의까지 듣고, 문제풀의 강의도 한두과목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강의를 듣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나중에는 배속을 막 올려서 빠르게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2차 과목은 관세법, 관세율표, 관세평가, 무역실무 이렇게 네 과목이었는데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었습니다. 분량도 분량인데 1차 공부할 때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세계라 처음엔 공부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몇 년이 지났어도 2차 과목을 처음 공부했을 때의 느꼈던 압도적인 절망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ㅎ
+ 완전 새로운 내용(특히 관세율표의 압박)
+ 1등~90등까지만 합격
+ 최대한 많이 써내야 하는 서술형
+ 떨어지면 엉망진창 물경력으로 취준해야 함
+ 개같이 일해서 번 돈을 날림
+ 한 거 없이 나이만 먹음
막 이런 생각이 매일같이 들었습니다. 다른 고시도 그렇겠지만 합격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모든 것을 걸고 공부해야 한다는 상황이 막상 공부하는 것보다 힘들더라고요. 버는 돈이 없으니 씀씀이를 줄이게 되고, 푸석한 얼굴로 매일 독서실만 오가는 제 모습이 초라하기도 하고요.
전업 공부 중에 집에 일이 생겨서 모아둔 목돈을 한방에 쓰게 되었는데요. 흑. 그래서 동생한테 식비를 받아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이천 원짜리 김치참치 주먹밥이 비싸서 천오백 원짜리 김치 주먹밥을 먹었었습죠.... 지금 보면 저도 나름 독했던 것 같네요. ㅋㅋㅋㅋ
대학 시절 지옥같았던 2년 동안의 취준 생활과 지옥 밖에 지옥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첫 직장생활을 곱씹어가면서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배수의 진 작전이었습니다.
기초 강의 들을 때에는 이해가 안되도 일단 듣고 무조건 복습했습니다. 냅다 써가면서 복습을 하고, 이해되면 좋고,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웠습니다. 그냥 계속 책 내용을 쓰면서 외우려고 했는데 이해가 잘 안 되니 잘 외워지지도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외워지는 게 당연하다! 일단 보고 다음에 또 보자면서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던 기억이... ㅋㅋ
이렇게 외우는 과정과 이해하는 과정을 체계없이 마구마구 반복했는데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계속, 꾸준하게 하니까 어느 순간 확 머릿속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오점수를 실제 느꼈던 때였쥬.
관세율표는 요약집을 성경처럼 들고 다니면서 외웠는데요. 지금은 거진 다 까먹었지만 공부하면서 관세율표 다 외우려고 만들었던 줄임말이 정말 많았습니다... 말소돼면가기...감토양양상당오채기.... 공부해 보신 분들을 다 아실 것 같아요. ㅋㅋㅋ
1류부터 97류까지 주 규정과 4 단위 호를 어떻게 외우나 싶었는데... 1년이면 그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시험 직전에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잡채인 28류~29류 화학물질도 꾸역꾸역 머릿속에서 밀려 나오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암튼 5월에 2차 공부 시작해서 10월까지는 감도 못 잡고 허우적대다가 11월~12월 즈음에는 뭔가 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벽하게 습득한 건 아니어도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고, 내가 어딜 더 공부해야 하는지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랄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에 모의고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2차 공부의 꽃이죠.
모의고사는 매주 학원에서 실제 시험처럼 문제를 풀고 등수를 매기는 잔인한 커리큘럼이었는데요. 1주일에 한 번씩 적나라하게 등수가 나오기 때문에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1월부터 바로 전 범위를 출제하진 않고 조금씩 출제범위를 늘려나가다가 시험 2달 전부터는 전체 범위를 출제했던 것 같아요.
출제 범위가 가장 좁았던 첫 모의고사에서 110등인가 하고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1~12월에 뭔가 되어가고 있다는 근자감을 느끼다가 첫 시험에서 바로 탈락해 버리니 멘붕이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ㅋ
외워야 할 범위는 계속 늘어나는데 등수는 매주 나오고.. 뒤돌아서면 까먹고..
어제 까먹었던 내용은 체크해 놨다가 다음날 다시 복기해 보고, 또 까먹으면 체크해 두었다가 다음날 다시 떠올려보는 식으로 텅 빈 도화지 같던 뇌를 채워갔던 것 같습니다.
110등에서 시작했지만 90등, 30등... 등수를 쭉쭉 올려서 2등도 한 번 해봤고요. 4월 이후부터는 쭉 30등 이내에서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습니다. 후후
2차 시험은 서술형이라서 정해진 시간 동안 정확한 답변을 최대한 많이 써내야 하는데요. 펜이 손에 안 맞아서 테이프를 칭칭 감아서 숫하게 만든 펜으로 참 열심히도 썼던 기억이 납니다. 펜심을 거진 100개 넘게 쓴 것 같아요...
5월부터는 과장 조금 보태서 어느 페이지에 어느 내용이 있는지 대충 떠오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목차는 생각만 하면 술술 나왔고, 1주일이면 1 회독이 가능했죠. 관세율표는 각 부, 류마다 있는 제외 규정까지 술술 읊고요. ㅋㅋㅋ
시험 당일. 관세법, 관세율표를 제대로 찢고 합격이겠구나-했는데요. 이거 웬걸. 오후 시험과목인 관세평가와 무역실무에서 개망하는 바람에 집에 울면서 갔었습니다. 관세평가에서 과락이 났다는 확신이 들어서 시험 다음날부터 바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을 정도로요.
그래서 시험 보고 결과 발표까지의 기간은 제 기억에 없습니다. 따흑. 취직 준비를 하고 조그만 회사에서 8 to 6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거든요. 발표 당일에도 출근길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합격 두 글자보고 입.틀.막.
이렇게 2차도 결국 합격했습니다.
공부하던 시절을 천천히 곱씹어보니 지금의 제 일상이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습니다.
일하면서 화주한테 치이고 세관에서 치이고 포워더한테 치이고... 여기저기 쳐맞고 다니는 일상이지만, 한때 이걸 꿈꿨던 제가 있기에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꽈...!!
처우가 조금 더 개선되면 좋겠지만 그래도 불평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