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날.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봅니다.
대학에서 문과를 전공한 데다가 특별한 능력이 없어서 취업하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무역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해외영업이나 유통, 물류 분야에 지원을 했었는데요. 거진 2년간 취준 하면서 서류는 겨우 3군데 붙었을 정도로 암울했었죠. 생각해 보면 영어도, 중국어도 업으로 할만큼 잘하지 못했는데 무역 분야에 지원했던 게 좋지 못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게 2년 동안 자존감이 바닥을 기다가 운 좋게 중견기업 행정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1년 만에 알았죠. 여기서 더 일했다가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ㅎ
공식 출근하기 전날, 회식 자리에 부를 때부터 뭔가 쎄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회 초년생의 마음가짐으로 잘해보자고 다짐했었는데요. 하는 일이 매출, 매입 전표 정리에 업체 방문하면 커피 타주고 자재 수불부 관리하는 등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커리어를 쌓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업계 전망도 노답...
그래서 전문 자격증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관세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흙수저라 월급받아 모은 돈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회계사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세무사와 관세사 중 고민하다가 한때 무역, 물류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찌..? 하면서 관세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세무사.할.껄...)
온라인에서 찾아본 관세사는 참 멋있었습니다. 수출입통관 대리! 무역계의 전문가! 연봉 1억! 이런 느낌 ㅋ
암튼 관세사 시험에 대해 알아보니 1차는 직장 다니면서 준비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1차 시험은 돈을 아낄 겸 회사 다니면서 준비해보려고 했습니다.
결정하자마자 2월 즈음에 1차 시험을 냅다 접수했는데요. 뭐 시험 한 달 반 정도 남겨놓고 공부를 시작했으니 될 턱이 없었죠. 인강을 다 듣지도 못한 상태라 시험장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 원 날리고 시작.
개꼰대였던 회사는 저녁 8시가 비공식 퇴근시간이었습니다. 원래 5시 반이 정시퇴근시간이었는데요. 정확히 딱 그 시간에 다.같.이 저녁 먹으러 나갔었죠. 그리고 일이 없어도 퇴근을 못하고 멍 때리다가 8시가 되면 퇴근하는 일과였습니다. 8시에 딱 나와도 칼퇴근이라고 했듬..
암튼 집에 오면 9시가 넘었고, 씻고 인강 1개 보면 자야될 시간이었습니다. 복습할 시간이 없어서 그저 강의만 주야장천 들으니 공부가 될 리 없었죠.
회사 다니면서 출퇴근 전후로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계발하시는 분들 참 많지만요.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구나... ㅋㅋㅋㅋ
그래도 15년도에는 공부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항상 가지고 강의는 꾸준히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제대로 삘 받아서 새벽까지 회계학 강의를 들었었는데요. 하품을 너무 크게 해서 턱이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새벽이라 침 질질 흐르는 상태로 응급실 가서 빠진 턱 다시 끼웠죠.ㅎ
(10초 만에 턱이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4만 원 냈읍니다.)
그렇게 1년 내내 강의를 듣다가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는 가능성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다니던 회사 2년 딱 채우고 2월 28일 자로 퇴사를 했습니다. 1차 시험이 고작 1달 반 정도 남아있었습니다. 인강 보고 대충 복습하면서 공부한 게 1년이지만 머릿속에 든 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퇴사하고 미친 듯이 1차 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사실상 1차는 이 한 달 반동안 준비한 게 다였던 것 같아요.
하루종일 법 외우고, 문제 풀고 까먹은 거 다시 보고 반복 또 반복..
1차 시험의 과락대장인 회계는 쉬운 문제만 정확하게 풀어서 과락만 면하자는 전략으로 문제를 엄청 많이 풀었던 기억이 나네요. 실제로도 회계는 과락만 면하고, 나머지 과목에서 평균을 높여서 1차 합격했습니다.
1차를 합격하고 나서 4월 한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야무지게 놀았습니다.
갓 퇴사를 했던 때라 수중에 쥐고 있는 돈도 있었고 시간도 많았던 그때.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의 황금기였네요. ㅋㅋㅋㅋ
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5월부터 관세사 2차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